밴더빌트 리포트 | 인문사회과학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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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더빌트 리포트 | 인문사회과학의 오늘

[심층 기획 1] 이념이 학문을 집어삼켰다… ‘밴더빌트 리포트’가 폭로한 인문학의 위기


학자 그룹, 밴더빌트·워싱턴 대 총장에 보고서 제출
"학문적 엄정성 대신 정치적 검증·도덕적 기치 횡행"
좌우파 진영 논리 넘어 인문·사회과학 연구 기준 붕괴 경고

철학자 폴 보고시안 교수가 온라인 매체 《퀼렛(Quillette)》에 이른바 '밴더빌트 리포트'를 공개해 북미 학계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미국 주요 대학의 학자들이 총장단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이 리포트에는, 현재 인문학과 사회과학 연구가 학문적 엄격함을 상실한 채 특정 정치교리에 휘둘리고 있다는 구체적인 고발 내용이 담겨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가 보기에 현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학술 연구에는 우려스러운 몇 가지 경향이 존재하며, 이 모든 경향은 학술 연구라는 기획이 지식과 이해의 증진을 넘어선 정치적(사회적 또는 도덕적) 목표에 종속되거나 그에 봉사해야 한다고 여기는 특유의 정치화 형태를 다양한 정도로 반영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목표들이 학술 연구라는 기획을 실제로 왜곡할 때 발생하며, 불행히도 현재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 보고서의 제출과 배경

 지난 2026년 4월 5일, 일단의 중진 학자들은 대니얼 디어마이어(Daniel Diermeier) 밴더빌트 대학교 총장과 앤드루 D. 마틴(Andrew D. Martin) 워싱턴 대학교(St. Louis) 총장을 비롯해 대학 내 학술 연구의 파행을 우려하는 전국 대학 총장들에게 '인문학 및 인문사회과학의 연구 실태에 관한 보고서'를 정식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학부 수업이나 캠퍼스 내 표현의 자유 논쟁에 치우쳤던 기존의 담론에서 벗어나, 대학 교원들이 생산하는 '학술 논문 및 연구서의 질적 저하와 왜곡'을 핵심 문제로 짚어냈다. 

■ 사태의 본질: 지식 탐구가 아닌 ‘정치적 목적’의 종속

 보고서가 폭로한 실제 위기는 "학술 연구가 지식과 이해의 증진이 아닌, 특정 정치적·사회적 목표(예: '사회 정의', '평등주의', '반인종주의' 등)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점에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다음과 같은 왜곡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 도덕적·정치적 잣대의 학문 기준 대체: 연구 결과의 증거 능력과 논리적 엄밀성 대신, 논문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특정 정치적 정통성(orthodoxy)에 부합하는지가 평가의 기준이 되고 있다.
  • 이견 배척과 반대 학설 교두보 차단: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대해 입증된 기존 학설이나 정통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는 철저히 배제되거나 '윤리적 결함'이 있다는 이유로 따로 제외된다.
  • 유사 학문(pseudo-scholarship)의 양산: 학술적 형태와 형식은 갖추었으나 진리 탐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교조적 주장을 반복하는 논문들이 학술지를 채우고 있다.

■ 학계와 문화계에 던지는 경종

 보고서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인간 삶에 대한 간접적 증거와 논증을 통해 진리를 찾아가는 정당한 학문적 규칙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대에 새의 행동을 보고 미래를 점치던 '점술(augury)'이 복잡한 규칙을 가졌음에도 허구였던 것처럼, 현재 학계가 공유하는 평가 기준 역시 정치적 목적에 휘둘려 학문으로서의 효용을 잃어가는 '허구적 기준'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밴더빌트 리포트는 인문학이 단순한 재정적 위기나 학생 수 감소라는 외형적 문제를 넘어, '무엇이 정당한 학문인가'라는 내부적 기준의 자멸 위기에 봉착했음을 보여주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현재 이 사태는 인문학이 도덕적 당위성이라는 온실에서 벗어나, 어떻게 자신들만의 엄밀하고 객관적인 논증 기준을 재구축하여 대학사회와 대중의 신뢰를 되찾을 것인가하는 무거운 숙제를 남긴 채, 현재 진행형의 치열한 인식론적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편집자 주: 이하의 본문은 2026년 4월 5일 대니얼 디어마이어(Daniel Diermeier) 밴더빌트 대학교 총장과 앤드루 D. 마틴(Andrew D. Martin)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 총장에게 제출된 보고서인 《인문학 및 인문사회과학의 학술 연구 실태》를 저자들의 허락을 받아 개작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인문학 분야의 학술 연구 실태를 우려하는 모든 대학 총장 및 이사장들"을 수신인으로 하고 있다. 전체 연구자 10인의 명단은 글의 맨뒤에서 확인할 수 있다.(보고서는 6월 6일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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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탐구는 끝났다, 오직 사상 검증만 남았을 뿐이다."
오늘날 대학의 인문사회과학은 지식과 진리를 탐구하는 본연의 목적을 잃고, 특정 정치적 교리를 수호하는 '사상 검증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밴더빌트 대학교 총장 등에게 보고된 이 충격적인 실태 보고서는 현대 학계(특히 사회학 및 문화연구 등 인문사회과학 전반)가 어떻게 객관성을 내던지고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명백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여성 사냥꾼' 논문이 학술지를 무사 통과한 이유는 무엇인가?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는 왜 저명한 학자들의 출판을 방해하려 했는가? 이 글은 '올바른 정치적 결론'을 사전에 강요하는 학계의 권위주의적 메커니즘을 낱낱이 파헤친다. 나아가 객관적 사실을 입맛대로 꾸며내는 '비판적 허구화'의 기만과, 해독 불가능한 헛소리에 가까운 학술 용어의 남용이 어떻게 지식 생산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는지 경고한다.

인문사회과학 학술 생태계를 질식시키고 있는 이념적 단일 문화의 실체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학문 왜곡의 생생한 사례들이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전문을 확인해야 한다.

[심층 기획 2] "경직된 잣대와 이념의 늪을 넘어"… 애슐리 루빈, 양극화 시대 사회과학의 새 길을 묻다


애슐리 루빈 <정치적 양극화 시대의 올바른 연구 행위: 하나의 개입>

앞서 《퀼렛》을 통해 철학자 폴 보고시안이 등판하기까지, 위원회 10인 가운데 '밴더빌트 리포트' 를 둘러싼 찬반 논쟁에 직접 개입한 이는 사회학자 애슐리 루빈이 유일했다. 루빈은 6월 초부터 초안과 완성과정을 설명하는가 하면, 학계 안팎의 각종 비판에 대응하는 수비수 역할을 해 왔으며 지금도 하고 있다.

Rubin, A.T. Appropriate research conduct in an age of political polarization: an intervention. Theor Soc 55, 50 (2026). https://doi.org/10.1007/s11186-026-09726-7
그간의 작업 과정 전모는 그의 서브스택에 오롯이 담겨있다.

[애슐리 루빈] 들여다보기
밴더빌트 대학교와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는 우리에게 인문학 및 인문사회과학의 실태를 조사해 달라고 의뢰했다. 특히 학계 내부의 정치화(internal politicization)가 학술적 기준의 건전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중점적으로 살펴달라는 요청이었다. 우리는 인류학, 역사학, 문학 연구, 음악학, 철학, 사회학을 조사했다. 이 중 나는 사회학 부문의 연구 조사를 담당했으며, 위원회 활동을 위해 수행한 내 연구를 바탕으로 다음 달에 별도의 보고서를 출판할 예정이다.

사회학자 루빈은 지난 6월초 '밴더빌트 리포트' 발표 이후 줄곧 대학과 지식인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 내놓는 작업량은 그의 깊은 몰입감을 느끼게 할 정도다. 앞서의 학술 논문을 필두로 <밴더빌트 리포트 회고 1,2> <‘지루하고 편향되며 형편없는’ 사회과학>, <사회학 연구의 전문성 저하> <대학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등의 글을 제출하였다. 이들 작업을 바탕으로 향후 그가 내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사회과학 종합보고서>의 블르프린트를 미리 그려본다.

■ 진단: '지루하고 편향되며 형편없는' 지식 생산의 덫

루빈의 종합 보고서는 가장 먼저 현재 사회과학계가 마주한 '방법론적 경직성'과 '이념적 맹신'을 정조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학계가 연구를 평가할 때 내용의 혁신성이나 실질적 가치보다는,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방법론적 잣대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로 인해 연구는 무미건조하고 '지루해지며',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특정 이념적 서사에만 꿰맞추려다 보니 본질적으로 '편향되고 형편없는' 결과물을 양산하게 된다는 뼈아픈 진단이 보고서의 서두를 장식할 것이다.

■ 성찰: 밴더빌트 리포트의 충격을 넘어선 질적 연구의 재건

보고서의 중반부는 밴더빌트 리포트가 고발한 '학문의 정치화' 사태에 대한 사회학계 내부의 응답으로 채워질 전망이다. 루빈은 밴더빌트 리포트의 비판(이념적 검증이 학문적 기준을 대체했다는 지적)이 지닌 타당성을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도, 이것이 곧장 과거의 실증주의로 퇴행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 대신, 권력 관계를 해체하고 소외된 목소리를 담아내는 사회학 및 문화연구의 질적 연구가 어떻게 '사이비 학문'이라는 오명을 벗고 고유의 학문적 엄밀성과 객관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론적 대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 과제: 양극화 시대, 확증편향을 깨는 학문적 다원주의

결론부에서는 극단적인 '양극화 시대'가 대학과 연구자들에게 미치는 치명적인 해악을 분석한다. 정치적, 사회적 진영 논리가 학계 깊숙이 침투하면서, 연구자들이 자신이 속한 진영의 입맛에 맞는 결과만 도출하려는 확증편향에 빠져 있음을 경고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핵심 처방으로 루빈은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과 '방법론적 다원주의'를 제안할 것이다. 이견을 억압하는 이념적 단일 문화(ideological monoculture)를 타파하고, 서로 다른 시각과 연구 방법이 건강하게 충돌하며 교차 검증할 수 있는 공론장으로서의 학술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강력한 촉구가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 전망: 진리 탐구와 사회적 헌신의 아슬아슬한 균형찾기

결국 루빈이 준비 중인 종합 보고서는 사회학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이 '학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기여'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치열한 균형 찾기의 산물이 될 것이다. 연구가 단순한 '정치적 옹호(advocacy)'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동시에 현실의 복잡성을 제대로 담아내는 역동적인 사회과학의 청사진을 대중과 학계 앞에 내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애슐리 루빈의 '블루프린트'
Rubin, A. T.(26.7.11.) 대학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Read Review VIBE]
Rubin, A. T.(26.6.19.) 밴더빌트 리포트 회고 2부 [Read Review VIBE]
Rubin, A. T. (26.6.13.) 밴더빌트 리포트 회고 1부 [Read Review VIBE]
Rubin, A. T.(26.5.9.) 사회과학 연구의 전문성 저하 [Read Review VIBE]
Rubin, A. T. (26.3.9.). 지루하고 편향되며 형편없는: '모자무싸' 사회과학 [Read Review VIBE]

Around the Web & Substack


❶ [노아 스미스] "나는 노동계급이었던 적이 없다"(202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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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0년대에 네 사람이 화장실 하나를 같이 쓰는 작은 집에서 자랐다. 바닥은 리놀륨(저가 장판 재질)이었고, 차고 대신 간이 차량 덮개만 있었으며, 우리 집 차는 다 부서져 가는 중고 토요타 터셀 해치백 한 대가 전부였다. 언제 처음으로 컬러 TV를 갖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릴 적에는 할머니가 주신 흑백 TV가 있었다. 가구는 전부 중고였고, 소파는 닳고 낡은 담요로 덮어놓고 살았다.

 ​어릴 때는 돈을 벌려고 이웃집 잔디를 깎았다. 고등학생 때는 최저임금을 받고 텍사스 A&M 대학교의 농업 연구 프로젝트에서 손으로 직접 목화를 따는 일(!!)에 지원하기도 했다. 계산원으로 일한 적도 있다. 살면서 노동조합에 두 번 가입해 보았고, 파업 투쟁에 참여해 행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노동계급(Working Class)의 일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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❷ [리처드 하나니아] "<소프라노스>는 왜 위대한 걸작인가?"(202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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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테어리언 경제학자 브라이언 캐플런은 얼마 전 다음과 같은 말을 공표한 바 있다. "그를 둘러싸고 여러 논쟁적인 말들이 오가지만 그것들은 다 부차적이다. 내 경험상 리처드 하나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섹시하고 위대한 에세이스트다." 이번 <소프라노스> 문화비평을 접하고 나니, 캐플런이 언급한 '위대한 에세이스트'라는 표현이 비로소 깊이 실감 난다.

하나니아가 <소프라노스>에 대해 깊은 비평적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의 친구 롭 헨더슨과도 몇 차례나 <소프라노스>를 주제로 팟캐스트를 진행하지 않았던가. 언젠가 한 번쯤 정돈된 글을 쓰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토록 굵직하고 거대한 비평문을 불쑥 내놓을 줄은 몰랐기에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다. 신작 <카키스토크라시(Kakistocracy)> 집필에 전력투구하는 와중에도 줄곧 <소프라노스>에 대한 생각을 치열하게 정리해 왔던 셈이다. 참고로 이번 The Atlantic(2026 8월호) 기획기사 "안티 포퓰리스트 하나니아"가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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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ti-Populist
The writer and former white supremacist Richard Hanania was once the toast of MAGA-curious tech barons and reactionary intellectuals. Now he thinks Trumpism has broken their brains.

❸ [다니엘 무뇨스] "설국열차에서의 혁명적 투쟁: 지젝과 롤스의 만남"(202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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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설국열차'는 극한의 양극화와 폐쇄적인 계급 사회로 굳어진 기득권 중심의 체제를 상징한다. 이 안에서 벌어지는 '혁명적 투쟁'은 억압받는 꼬리칸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반란이다. 무뇨스는 이 폭력적 충돌을 단순한 영화적 서사를 넘어, 불평등한 시스템을 타파하려는 사회적 저항 운동 전반에 대한 은유로 설정한다.
부제는 반란의 궁극적 목적지를 두고 충돌하는 두 가지 철학적 해법을 암시한다.

이러한 제목과 부제는, 결국 "합리적 분배(롤스)를 통해 낡은 시스템을 고쳐 쓸 것인가, 아니면 억압의 굴레(지젝) 자체를 거부하고 탈선시킬 것인가?"라는 구조적 불평등 앞의 거대한 딜레마를 영화적 상상력에 빗대어 예리하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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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ra of Musa al-Gharbi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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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테로독스 아카데미(HxA)의 설립자이자 무사의 연구를 줄곧 지지해 온 조너선 하이트는 2025년 7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시대의 역사가 기록되고, 미국의 교육기관이 어떻게 방향을 잃고 대중의 신뢰를 상실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질 때, 무사 알가르비는 영웅으로 부상할 것이다. 그는 대학원생 신분으로 HxA 팀에 합류해 순식간에 우리의 가장 심도 있고, 가장 주류 통념에 얽매이지 않는(heterodox) 학자로 자리 잡았다. 지성사에 관한 그의 글은 우리가 지금껏 발행한 에세이 중 가장 심오한 축에 속한다. 우리 대학이 신뢰와 탁월성을 되찾고자 한다면, 무사의 연구가 개혁의 토대에 놓여야 한다."

헤테로독스 아카데미 2025 어워드

케빈 코코란의 무사 알가르비 깊이 읽기

케빈 코코란은 이콘로그(EconLog)에서 활동하는 저명한 컬럼니스트이자 경제분석가다. 지금 서브스택에서 활동하는 자유주의 성향의 경제학자나 철학자는 대부분 이곳 플랫폼 출신이다.

케빈 코코란이 이 책을 집중 독해하는 이유

케빈 코코란은 평소 자신이 흥미롭게 읽은 책을 여러 편의 블로그 글로 나누어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연재(multi-post deep dive)를 종종 진행한다. 그가 경제학 서적이 아닌 사회학자 무사 알가르비(Musa al-Gharbi)의 저서 『우리는 결코 깨어있지 않았다』를 선택한 이유는, 이 책의 사회학적 통찰이 경제학 및 공공선택론적 관점과 깊은 접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알가르비는 이 책에서 인종, 젠더, 불평등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른바 '워크(Woke·깨어있음)' 문화가, 실상은 고학력 신흥 엘리트(상징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특권을 방어하고 확장하기 위해 활용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라고 비판한다. 특히 '엘리트 과잉 생산(elite overproduction)'으로 인해 엘리트 간의 지위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약자를 대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챙기는 구조적 모순을 파헤친다.

이처럼 이타주의로 포장된 특정 계층의 위선과 인센티브 구조, 지위 경쟁의 동기를 냉철하게 해부하는 알가르비의 접근은 경제학자나 자유주의자들이 제도를 분석하는 방식과 매우 잘 부합한다. 즉, 겉으로 내세우는 선의보다 실제 작동하는 이익 구조를 분석했다는 점에서 코코란의 지적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기에 집중 독해의 대상이 된 것이다.


"깨어있다는 착각, 세속적이라는 기만"_무사 알가르비의 새로운 통찰

사회학자 무사 알가르비는 2024년 『우리는 결코 깨어 있지 않았다』를 통해 신흥 엘리트들의 위선을 폭로하며 학계와 대중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어 그는 최근 세인트존스 대학에서 진행한 강연 <우리는 결코 세속적이지 않았다(We Have Never Been Secular)>를 통해 이 논의를 한 차원 더 깊은 역사적, 종교적 맥락으로 확장했다

​두 제목 모두 프랑스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명저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지 않았다』를 오마주한 것으로, 현대 지식인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환상을 사회학적으로 정면에서 깨부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 ​환상 1 <우리는 결코 깨어있지 않았다>: 고학력 신흥 엘리트들이 인종, 젠더, 불평등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스스로 '깨어있다(woke)'고 자부하지만, 실상은 그 이념을 도구로 삼아 자신들의 상징적 권력과 사회적 특권을 방어하고 확장할 뿐이라는 냉철한 분석이다.

환상 2 <우리는 결코 세속적이지 않았다>: 스스로를 특정 종교의 교리에 읽매이지 않는 합리적이고 '세속적인' 지성인으로 여기는 오늘날의 엘리트들이, 사실은 과거 청교도들이 보여주던 극단적인 율법주의와 배타성을 '사회 정의'(social justice)라는 이름의 새로운 종교적 형태로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차용해, 명시적인 종교적 간판만 뗐을 뿐 현대의 '워크' 문화가 얼마나 종교적 열망과 구조를 답습하고 있는지 포착하고 있다.

​그럼, 깨어있다와 세속적이라는 말은 반대말일까, 유사어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 엘리트들의 자기 인식 속에서는 동전의 양면처럼 '유사어'로 쓰이지만, 알가르비의 분석틀 안에서는 엘리트들의 기만을 폭록하는 '모순적 개념'으로 작동한다.

  • 엘리트들의 착각 (유사어적 결합): 오늘날의 주류 지식인들은 스스로를 맹목적인 종교나 미신에서 벗어난 '세속적(합리적, 이성적)'인 존재이자,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을 예민하게 인식하는 '깨어있는(도덕적, 진보적)' 존재로 규정한다. 즉, 그들에게 이 두 단어는 낡은 과거와 단절된 세련된 현대 지식인을 완성하는 필수 불가결한 유사어다.
  • 알가르비의 통찰 (모순과 기만): 알가르비는 이 결합이 완벽한 기만임을 지적한다. 엘리트들이 그토록 '깨어있고자' 집착하는 태도(PC주의 강요,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캔슬컬처' 등)는 과거 종교적 이단 심문이나 청교도적 금욕주의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따라서 그들은 새로운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므로 결코 '세속적'이지 않으며, 약자를 위한다면서 결국 자기 계급의 지위 경쟁에만 몰두하고 있으므로 진정으로 '깨어있지'도 않다.​

결국 알가르비는 현대 엘리트들이 합리성(세속주의)과 도덕성(워크 문화)이라는 두 가지 훈장을 뽐내고 있지만, 실상은 객관적 진실 탐구라는 사회과학의 본령을 잃어버린 채 과거의 낡은 종교적 위계질서를 이름만 바꾸어 답습하고 있음을 도발적으로 지적하는 것.


From the Editor's Desk


저널리스트 앤드류 설리번의 Out On a Limb(2021)을 자주 들춰보는 편이다. 애초 이걸 뉴스레터 제목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적절한 우리말을 끝내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이나 고립을 무릅쓰고” 매주 발행하도록 하겠다. (앤드류 설리번의 서브스택 The Weekly Dish도 강추한다!)

 해외뉴스 하나를 소개하면서 이번 첫 뉴스레터는 마감한다.

이번 주 영국에선 '포스트-프로그레시비즘'이란 주제로 일군의 '헤테로독스한' 학자들이 모여 작당모의를 꾸민다고 한다. 작년에 첫 콘퍼런스였는데 이번 역시 같은 주제를 내걸고 있다. '새로운 사회과학을 향하여' 라는 '버킹엄 선언'(Read "Review VIBE")이 공표되기도 했다. 올해 참석자 명단을 보니 아주 흥미로운 이단적 지식의 축제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Heterodox Conference 2026 | Post-Progressivism?: Toward a New Social Science